사실 여행 계획을 그렇게 철저하게 짜는 편은 아니다. 평소에는 사소한 것도 열심히 계획을 짜는 편이긴 한데, 그럴 때에도 항상 시간이 촉박할 때 계획을 짜기 시작하는 편이다.
이날은, 여행 계획이 아예 없었다. 계획을 세우기 싫어서 안 세운 건 아니고, 아는 선배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선배가 대충 다 끌고 다녀 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는 계획을 아무 것도 안 짰다. 이날은 그렇게 끌려 다닌 기록이다.
아사쿠사에 가다, 그리고 기모노를 입다
이날은 기모노를 입고 아사쿠사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런데 날씨 예보에서 계속 비가 온다고 하길래 많이 걱정했는데, 비가 내리진 않았고 그냥 계속 흐리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아사쿠사에는 버거킹도 있었다. 버거킹은 나한테는 불호인 버거 가게인데, 파는 메뉴들을 보니 일본도 딱히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최근 우리나라에 출시한 이름이 긴 버거같이 생긴 것이 일본에도 있었다. 이름은 길지는 않았지만...
똑같은 길을 돌아오는 도중에 찍은 사진. 일본 버거킹도 무리수를 두는 건 마찬가지구나 싶었다.
그리고 선배를 만난 후 기모노 렌탈 샵으로 갔다. 기모노를 입고 느낀 첫인상은 신발이 불편하다는 것. 평소보다 보폭이 두 배는 줄어드는 체감이었다. 여자는 헤어 세팅도 받는다길래 하염없이 선배를 기다리고 기모노 의상으로 만났을 때는...
선배의 보폭은 세 배 정도 줄어든 것 같았다. 전날에도 계속 돌아다녀서 힘들었는데 오늘 진짜 엄청 돌아다니면 어떡하지 하며 고민했는데, 선배가 걷는 걸 불편해 하는 걸 보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센소지의 산호는 금룡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기에 금룡산이라고 붙어 있었나보다. 갔을 때는 몰랐는데, 가고 나서 조사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어 여행 후에도 이렇게 소소한 재미가 있다.
상점가가 길게 늘어서 있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이 날의 날씨는 계속 흐린 상태였다.
처음으로 먹은 것은 당고와 말차 히야시였다. 당고는 딱 인절미 느낌이었고, 말차 히야시가 맛있었다. 좀 달달하게 느껴지는 것이 말차 말고도 달달한 무언가를 탔나 싶을 정도였다. 나는 딱 좋았는데, 선배는 뭔가 말차가 밍밍해서 물을 탄 것 같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말차를 차의 형태로 마셔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말차 초콜릿, 말차 소프트 아이스크림, 말차 젤라또처럼 말차를 이용한 다른 먹거리들은 많이 마셔 봤는데 정작 차로 마시는 것이 처음이라니...
두 번째로 먹은 것은 다이후쿠. 백딸기 다이후쿠가 200엔 더 비쌌는데 딱히 차이를 느끼진 못했다. 백딸기 다이후쿠는 그냥 팥 앙금으로만 팔고, 딸기 다이후쿠는 딸기 앙금으로 시켰다. 더블 딸기라나 뭐라나 하면서 시켰던 기억이 있다.
기본적으로 팥 앙금 베이스여서 그런지 딸기 앙금이 그렇게 딸기같은 느낌은 없었다. 일정 쿨타임마다 체내 딸기 농도를 보충해 줘야 할 정도로 딸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약간 실망스러웠다.
참고로, 아사쿠사 상점가에서 사 먹는 것들은 전부 걸으면서 먹는 것(食べ歩き)이 금지되어 있었다. 좁은 상점들 사이에서도 산 것들을 먹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거기서 다 먹고 움직여야 했다.
세 번째로 먹은 것은 멘치카츠. 어제도 먹었는데 오늘도 멘치카츠를 먹었다. 백종원이 다녀 간 멘치카츠 집보다 여기의 멘치카츠가 더 맛있다고 느꼈다. 여기는 멘치카츠만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라 그런 건지, 더 따뜻할 때 먹어서 그런 건지.
개인적으로 멘치카츠는 고기보다는 고기 사이에 들어간 야채의 맛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간고기에 큰 걸 기대할 수는 없을테니. 이 멘치카츠는 베어 물 때 기름인지 육즙인지 흘러나와서 손이 데이는 줄 알았다.
그렇게 상점가를 빠져나오면 기다리는 건물. 간판에 정확히 센소지(浅草寺)라고 적혀 있다. 난 여기가 아사쿠사니까 당연히 처음엔 아사쿠사데라겠지 싶었다. 아니면 아사쿠사테라거나...근데 나중에 보니까 센소지였다. 여긴 아사쿠사잖아...
일본어를 공부하면 흔히 있는 일이라 사실 익숙하다. 항상 일본어에게 뒤통수를 맞지만 맞을 때마다 뒤통수의 맷집이 강해져서 익숙하게 느껴지는 걸지 모르겠다.
100엔을 넣고 오미쿠지를 뽑았는데 반길이 나왔다. 반길인데도 뭔가 안좋은 내용들부터 눈에 들어오는 건 기분 탓인가... 소망도 원하는 대로는 되지 않고, 병도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길어질 것이고, 거주에 관해서도 잘 되지 않을 거라고 적혀 있는데.
그리고 잃어버리는 물건이 나올 것이라는 것은 잃어버린 물건을 찾게 될 것이라는 뜻인지 잃어버리는 물건이 생길 것이라는 뜻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
선배는 흉을 뽑아서 줄에 묶었다. 기모노를 입고 돌아다니면 가방도 맡기고 무슨 작은 주머니같은 거에 다 담아서 돌아 다녀야 하는데, 쓰잘데기 없이 길을 뽑아 버려서 오미쿠지 종이도 못 묶고 그대로 들고 다녀야 하는 게 정말 길이 맞나 싶었다.
센소지의 향로 앞에서 사람들이 연기를 쐬고 있었다. 이 향로는 항상 연기가 나는 향로라고 해서 죠코로라고 한다. 지금은 연기를 쐬는 부위의 아픔이 낫는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나는 그냥 앞에 가서 세수하듯이 얼굴 모든 곳으로 연기를 빨아들였다.
참고로 이후의 일본 여행에서 입술 윗부분이 계속 부르튼 것처럼 건조하고 아팠다.
네 번째로 먹은 건 타코야키. 나도 집에 타코야키 기계가 있어서 자주 해 먹을 정도로 나름 타코야키에는 조예가 깊어서 본토의 타코야키는 어떨까 싶어서 사 먹어 봤다. 물론 타코야키의 본토는 도쿄가 아니라 오사카긴 하지만...
일본은 타코야키에 베니쇼가가 올라가 있다. 나도 직접 해 먹을 때에는 베니쇼가를 넣어 먹는 편인데, 우리나라에서 타코야키를 사면 백이면 백 베니쇼가를 넣지 않아서 아쉽다.
보통의 타코야키보다 한 알 한 알이 커서 먹는 맛이 있었다. 속은 적당히 흐물흐물한 것이 내가 좋아하는 타코야키의 느낌이었다. 타코야키가 좀 컸지만 그래도 한 입에 먹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한 입에 먹었는데, 너무 뜨거워서 바로 옆 자판기로 달려가서 포카리스웨트를 사 마셨다. 마지막 한 알을 입에 넣을 때쯤에는 적당히 식어서 맛있게 먹었다.
사진에는 없지만 프리미엄 말차 싱글 컵(630엔)도 있었다.
이곳의 말차는 7단계로 나눠져 있는데, 1단계부터 6단계까지는 똑같은 말차인데 우유와의 배합을 얼마나 했느냐의 차이고, 7단계 말차는 아예 다른 프리미엄 말차를 사용해 가격을 올려 받는다. 나는 3단계, 선배는 7단계를 시켰는데 3단계 말차도 먹어 보니 어른의 맛에 버티지 못할 정도여서 7단계를 안 시키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4종 말차 당고는 그냥 시키면 주는 줄 알았는데 가게 안에서 먹을 경우에는 시즈오카 야부키타 센차와 세트로 시켜야 한다고 해서 원래 먹기로 한 호지차 와라비모치를 취소하고 그냥 세트로 시켰다. 차도 그냥 그랬고 당고도 그냥 그랬다. 당고의 특이한 점은 4종이라는 이름에 맞게 위에 올라간 말차 앙금이 점점 진해지는 것. 받고 나서 맛에 그라데이션이 있을까 했는데 딱히 그렇진 않았다. 내가 맛알못이라 그런가...
현미차 와라비모치는 내가 먹지는 않았는데 와라비모치가 타피오카처럼 펄로 들어가 있다고 했다. 딱히 맛이 있지는 않다고, 타피오카가 더 맛있다고 하더라.
어떤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스미다 강(隅田川). 그냥 반가워서 찍어 봤다. 참고로 이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스미다 구청 표지판이 있는데, 그 스미다 구는 일본어로 墨田区라고 쓰더라. 대체 왜 한자가 다를까 신경쓰였다. 여기를 건너는 중에 비가 조금씩 내려서 우산을 썼다.
아사히 맥주 빌딩에 왔다. 맥주를 따르고 거품이 올라온 맥주잔처럼 생긴 빌딩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멀리서 볼 때부터 대체 왜 빌딩의 외관을 금색으로 한거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위에는 하얗길래 바로 맥주잔이구나 싶었다.
자주 보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입장에서는 나름 인상깊게 잘 디자인했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옆에 보이는 접시는 안주로 시킨 소세지였다. 도쿄의 경치와 함께 즐기는 맥주...같은 사진을 원했으나 이미 거품이 다 꺼져서 아쉬웠다. 왜 거품이 꺼지기 전에 사진을 안 찍었냐 하면, 원래 경치 뷰 자리가 만석이라 그냥 내부 테이블 석으로 안내받았는데 맥주를 받고 좀 지나서 경치 뷰 자리가 비어서 옮길 수 있다고 안내를 받아 그제서야 옮겨서 찍었기 때문이다.
술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어서 그저 그랬다. 그나마 마시는 게 맥주긴 하지만...
아키하바라에 가다
갈 곳이 없어서 드디어 아키바에 들렀다. 내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 일본을 여행으로 온 적은 별로 없지만 여행으로 오든 다른 목적으로 오든 항상 들렀던 곳. 요즘은 딱히 무언가 좋아하는 작품이 있진 않지만 그냥 오는 곳이다.
아키바 출구로 나오자마자 이런저런 오타쿠 광고들이 반겨주었다. 가장 임팩트가 컸던 건 아무리 아키바여도 지하철에 걸리기엔 너무 야한 디자인이어서 의문의 검열 빔을 맞아버린 바니걸 토키 광고였다.
코로나 이후로 아키바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던데, 달라진 아키바는 처음이었다. 제일 먼저, 아쉬웠던 것은 몇몇 매장이 코로나를 버티지 못하고 닫아버린 것. 특히 토라노아나 A, B, C관이 전부 닫은 게 제일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많이 늘어난 메이드 카페 호객 행위. 메이드 의상을 한 사람들이 나한테까지 다가오면서 호객을 하는데,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어제는 정국, 오늘은 페이커.
진짜 온 세상이 블루 아카이브였다. 이번에 아키바를 점령한 건 블루 아카이브, 붕괴 스타레일, 원신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트레에 뭐가 달려 있느냐에 따라서 그때 유행하는 컨텐츠를 알 수 있는데, 이때는 블루 아카이브와 홀로라이브였다. 이번에 칸다 묘진과 콜라보해서 홀로라이브 소속의 많은 버추얼 유튜버들의 무녀복 일러스트로 장식되어 있었다.
어제 선배가 성공적으로 테스트해 주신 츠케멘을 저녁으로 하기로 했다. 괜찮았다. 귀국 후 다른 곳에서 츠케멘을 또 먹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무리
2일차 결산
실패한 일정: 없음(애초에 일정이 없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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