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행이었던 것에 플러스 알파가 붙게 된 원인이 되는 날이다. 오늘은 오사카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기 위해 신칸센을 타고 간사이로 향하는 날이다.
간사이로 향한다고 한 이유는, 오사카에서 만나는 게 아니라 교토에서 먼저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행으로써의 일본은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일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였던 전통적인 건축물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런 것들을 보고 싶다고 하니 친구는 교토에서 만나는 것을 권해 주었다.
오랜만의 기차는 일본에서
기차를 타 본지가 얼마나 됐을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 고향이 부산이었기 때문에 중부 지방에 올라와서 살던 우리 가족은 명절마다 고향에 가기 위해 KTX를 탔지만 그 마저도 언제부턴가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으로 변했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서 명절에 부산을 찾지 않은지도 오래 됐기 때문에, 아마 기차를 타지 않은지도 꽤 오래 지나지 않았을까 싶다.
몇 년만에 타는 기차가 일본에서 타는 기차라니, 사실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다. 도쿄에서 오사카가 신칸센으로 거리가 500km이 넘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100km 이상이 긴 것이다. 그런데도 운행 시간은 비슷한 걸 보면 신칸센은 정말 빠르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건 여담인데, 주위에 KTX를 타 본 적이 없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예전에는 깜짝 놀라곤 했다. 나는 명절 때 부산에 내려가는 게 당연해서 KTX를 타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는데, 명절에 멀리 가야 하는 특수성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KTX를 탈 일도 없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숙소가 이케부쿠로 주변이었기 때문에 처음에 JR 패스를 교환하며 신칸센을 예약했을 때 도쿄역보다 시나가와역에서 타는 것이 더 좋을 거라는 말을 듣고 시나가와역에서 타기로 했다.
신칸센을 타고 내부를 촬영하지는 않았지만 기차 내부에 특이하다고 생각되는 건 없었다. 적어도 내가 탄 칸에서는 그랬다. 오히려 특이했던 건 내 옆자리에 앉은, 캐나다에서 온 인도인이었다. 외국인 특유의 그 모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 바이브로 나에게도 말을 걸어 왔고, 얼떨결에 인스타그램 아이디까지 교환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창문으로 후지산이 보인다고 알려 주었다.
나고야에 도착할 즈음에 잠이 깼는데, 분명 인도 친구는 나더러 본인은 나고야에서 내린다고 하더니 세상 모르고 자고 있길래 깨워 줬다. "Oh, shit"이라는 짧은 문장과 함께 재빠르게 짐을 챙겨 내릴 준비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
처음에 간 곳은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였다. 타이샤(大社)라는 단어보다는 신사라는 단어로 익숙한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센본도리이가 정말 인상깊은 곳이라고는 알고 있었다.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는 후시미이나리역에서 내리면 바로 갈 수 있는데, 정말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곳처럼 느껴졌다.
조금만 들어가면 이어지는 센본도리이가 정말 인상깊었다. 이름은 센본(千本)이지만, 개수는 1만 개 가까이 있다고 한다. 일정 금액 이상을 기부하면 자신의 이름으로 도리이를 세울 수 있다고 하는데, 우스갯소리로 몇백 정도 기부하고 내 이름을 박아넣으면 어떨까라는 농담을 했다. 사실 센본도리이에 도리이가 어떻게 세워지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들 한번쯤은 생각해 보는 시덥잖은 농담일 것 같긴 했다.
이 위로도 센본도리이가 쭉 이어지는 풍경이 있을 것 같아 금방 내려왔다. 물론 정상까지 가거나 중요 체크포인트(?)와 같은 곳에 가면 다른 볼거리가 있었겠지만...
기요미즈데라
한자를 그대로 읽은 명칭인 청수사라고도 알려져 있는 기요미즈데라이다. 여행을 가기 전, 일본인 친구와 통화하다가 기요미즈데라에 간다고 하니 알려 준 내용인데, 원래 기요미즈데라는 나게미(投げ身)를 하는 곳이라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나게미가 어떤 단어인지 몰라서 나게미가 뭐야? 라고 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설마 나게(던지다)+미(몸)으로 이해가 돼서 설마 맞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했다.
그 내용인 즉슨, 소원을 빌며 높은 곳에서 몸을 던지고 살아남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것이었다. 직접 들었을 때는 "에..."하면서 깨는 반응을 했지만, 곧바로 다른 나라의 전통이나 역사에 대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큰 실례일 것 같아서 수습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실제로 살아남은 사람이 있지만 반신불구로 살아가게 되었다나 뭐라나. 일본인 친구 본인도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고 하는데 옛날 사람들의 생각이니 뭐라 말하기도 어렵다고 하더라.
기요미즈데라에서 내려올 때는 다른 길을 걷자고 해서 다른 길로 내려오니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로 공동묘지였다.
비석들은 서로 크기도 다르고 쌓인 모양도 달랐다. 몇몇 비석은 함께 뭉쳐 쌓이고 비석 위에 비석이 또 쌓여 있기도 했다. 비석에는 망자의 이름과 소속이 새겨져 있었다. 육군 자위대 소속이 많았던 것만은 기억하고 있다. 공동묘지라서 장소의 분위기가 썩 좋게 느껴지지는 않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내려왔다. 그런데 그 비석의 개수만큼은 정말 많아서, 한참을 내려가야 끝이 보이는 수준이었다.
이 길을 내려가다가 비둘기인지 뭔지의 조류의 배설물이 눈앞에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친구와 서로 마주보며 아까 신사에서 기도해서 안 맞은 것 같다고 했다.
교토를 느낄 수 있는 폰토초
이곳은 교토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폰토초라는 곳이다. 교토의 번화가를 조금만 옆으로 빠져나오면 있는 거리로, 음식점이 많이 있는 느낌이었다. 오전에 만나서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와 기요미즈데라를 들렸기에 약간 배가 고파 여기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유튜브에서 본 적 있는 오므라이스 식당 키치키치가 여기에 있다길래 그곳에 가고 싶었는데, 평일에는 저녁 타임부터 영업을 하는 것 같아 포기했다. 골든 위크니까 휴일처럼 생각하고 점심부터 운영하지 않을까 했는데 얄짤 없었다. 타베로그를 보고 가까운 곳의 규카츠 집으로 결정.
소고기라 그런지 값은 비쌌지만 여행와서 먹는 거에 돈 아끼는 것만큼 미련한 행동은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이기 때문에 별 생각 안하고 시켰다. 규카츠를 우설로 만들었다는 게 신기해서 우설로 시켰다. 또, 멘치카츠가 눈에 들어와서 멘치카츠도 시켰다. 어쩌다 보니 일본에서 사흘 연속으로 멘치카츠를 먹게 되었다. 의식하고 시킨 게 맞긴 하다. 멘치카츠는 어제보단 못했다.
아라시야마 대나무숲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 곳은 아라시야마 대나무숲. 사진으로 봤을 때 느껴지는 대나무숲의 신비로운 느낌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꼭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아라시야마역에서 내릴 때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길래 우산을 펼쳤다.
비가 내리지만 그래도 숲길이라 그나마 나았다.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나 기요미즈데라에 갔을 때 비가 내리는 것보다는 백배 나은 상황이었다. 비도 그렇게 세지 않아 이것 나름의 운치 있는 분위기가 있었다.
수많은 대나무가 보여 주는 경치는 정말 신비로웠다. 비가 점점 많이 내리는 것 같아 더 세지기 전에 오사카로 향하기로 했다.
아라시야마에서 교토로 간 다음 환승해서 오사카로 가는 여정이었다. 그런데 정말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비에 쫄딱 젖었을 것이었다. 환승을 위해 교토역에 내렸을 때, 교토역 내부에 있었는데도 비바람이 너무 강해 역 내부로 들어오는 비를 피할 수가 없었다. 분명 일기 예보에는 비가 내릴 확률도 없다고 했고 실시간 일기 예보에서도 그냥 조금 내리고 말 거라고 하더니 이렇게 강한 비가 계속 내렸다니...일본의 초단기 강수예측은 어떻게 되고 있는 걸까.
오사카로, 그리고 당황스러운 이름의 야키니쿠 가게
저녁 메뉴는 야키니쿠로 정해져 있었다. 문제는 어느 곳을 가느냐...역시 타베로그를 보고 있는데 범상치 않은 이름의 가게를 발견했다.
그 이름도 바로...
가게명에 어그로가 바로 끌려버린 우리는 홀린 듯이 이곳으로 향했다. 물론 '황섹머' 사건으로 인해 해외에서 이 단어가 나름 일반적으로는 어떤 용도인지는 알고 있었지만...참고로 전화로 예약을 받는 직원이 전화받을 때에도 상호명을 그냥 얘기하는 것이 아주 신기한 광경이었다. 물론 가게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그래도...
나는 맛있는 고기를 먹어도 그렇게 막 맛있다고 느끼지는 못하는 편인데, 내가 고기를 사 준 친구가 한국에서 먹었던 고기보다도 더 맛있다고 하면서 잘 먹더라. 사주는 입장에서도 맛있게 먹으니 기분이 좋았다.
주문할 때 밥의 가격(280엔)에 한번 놀라고, 밥에 김이 두 장 딸려 나온다는 사실에 놀라고, '한국 김'이라고 써 놓은 주제에 김의 퀄리티는 도시락에 딸려 오는 김 이하 수준이라는 것에 더 놀랐다. 또 김치를 시켜야 한다는 사실도...우리나라 최고.
그리고 난바에 오면 꼭 봐야 하는 게와 글리코상. 장소에 한 번 들린 걸로 업적을 두 개 달성한 느낌이었다.
베이시스트가 버스킹을 하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었다. 일단 나도 나름 베이스를 연주하는 사람의 입장이라, 멍때리고 보게 되더라. 노래는 Sting의 Englishman in New York.
근데 난바 사람 진짜 많더라...
네온사인이 주는 분위기는 나름의 정취가 있다.
오사카 역에서는 THE GRAND GAME이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실물 팩맨은 우천 관계상 취소되었다. 아타리 게임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사람들이 엄청나게 큰 화면으로 경쟁하고 있었다.
인생 두 번째 우메다 스카이빌딩
어렸을 때 어떤 단체에서 함께 일본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초등학생 때여서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우메다 스카이빌딩에 갔을 때 엄청 무서워했던 기억만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때 그 기억을 되짚어보기 위해 다시 한 번 우메다 스카이빌딩에 향하기로 했다.
두개의 빌딩을 짓고 공중 정원 전망대를 따로 만들어 조립해서 위로 올리는 데에만 몇 시간이 걸렸다고 하는데, 건축 기술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를 만드는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띄워 놓고 있었다.
밖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유리창 너머로 보는 경치와는 느낌이 다르다. 물론 고소공포증이 있어 일부 에스컬레이터도 제대로 타지 못하는 내게는 그저 공포의 연속이긴 했다. 그래서 그런지 건물 안에서 보는 것보다는 이런 식으로도 느낌이 또 다르다.
야경을 보면서 간식을 먹겠다고 크로플을 시키는 나를 말리고 싶다. 이날은 5월 1일인데도 뒤에 아마 제조일자를 적어놓은 것 같은, 4월 30일이라고 적혀 있는 박스에서 크로플을 꺼내어 주는 모습을 나는 보고 말았다. 눅눅해서 한 입 먹고 버렸다. 내 700엔...
일본에 가면 쓰는 돈의 숫자가 0이 하나씩 줄어들어 뭔가 많이 지출해도 지출한 금액 만큼의 느낌이 들지 않아 과소비를 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700엔 만큼은 차라리 7000원을 버리는 게 덜 아플 만큼 너무나도 아까웠다.
우메다 역에서 친구와 헤어지는 길에 눈의 꽃이 들려와서 향한 곳에는 나이 어린 아티스트가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QR 코드를 찍고 들어가 보니 SNS 팔로워가 300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아티스트였다. 그럼에도 버스킹을 하는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저 리플렛도 내가 떠날 때 즈음 해서는 사람들이 전부 가져가 동나 있었다.
그렇게 난바의 숙소로 돌아갔다.
마무리
3일차 결산
실패한 일정: 없음(가능하면 금각사를 추가로 들리고 싶긴 했으나 일정에는 넣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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