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은 전날과 다른 일본인 지인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전날은 상당히 힘들었지만, 그 때문에 이날의 만남은 더더욱 신중을 기울여서 약속된 시간이 지나면 칼같이 컷할 예정이었다. 이미 라인으로도 이후 혼자 오챠노미즈로 가기로 했다는 일정을 재차 강조한 바 있었다.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해서 대충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ガッツリ系(한국말로 옮기기가 힘들다--든든한 음식 정도의 뉘앙스가 있긴 함)도 괜찮냐고 해서 예를 들어 뭐가 있냐고 하니 라멘이나 돈카츠라고 하더라. 라멘은 벌써 세 번이나 먹었기 때문에 돈카츠가 괜찮을 것 같다고 하니까 자신의 친구가 하고 있는 돈카츠 집이 있으니 거기서 먹는 것이 어떻냐고 해서 이날의 점심은 돈카츠를 먹기로 결정했다.
아키하바라 구경하기
이날 만나는 건 오후 1시 반으로 정했기 때문에 오전에는 일정이 살짝 비어 잠시 먼저 돌아다니기로 했다. 오챠노미즈는 아키하바라와 바로 한 역 차이라서 아키바를 구경하기에도 지리적으로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키바에 가면 일반적으로는 토라노아나(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멜론북스나 이외 각종 구석진 곳에 있는 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는데, 생각해보니 바로 앞에 있는 라디오회관에 가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뭔가 내가 가는 곳과는 다르게 라디오회관은 아키바에 구경온 인싸들이 오타쿠의 무언가를 빼앗는 곳 같은 인상이 드는 곳이었다.
라디오회관 1층으로 가자마자 버추얼 유튜버와 콜라보를 하고 있는 술이 있었다. 이거 말고도 같은 사무소의 다른 버튜버와 콜라보한 제품이 두 개 정도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여기서는 페코라와 노엘만 발견됐다.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잘 마시지도 못하는 편이어서 페코라 술만 하나 골랐다. 노엘 콜라보 술은 도수가 강해서 애초에 토닉 워터 같은 거랑 섞어 먹으라고 만든 것 같았다. 가격도 비싸기도 하고...
이외에도 같은 곳에서 피카츄를 그리는 것으로 진부한 오미야게라는 이미지를 탈피하려 하는 도쿄 바나나와 몇몇 굿즈를 구매했다. 면세를 받아 약간 싸게 살 수 있었다. 면세를 요청할 때에는 세금 포함 5500엔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이때 여권이 필요하다. 요즘은 면세로 구매하면 QR코드로 영수증 링크를 준 다음 접속해서 스크린샷을 찍어두라고 하더라. 귀국할 때 보여줘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나는 보여주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버튜버 팝업 스토어가 열려서 이것도 구경하러 왔다. 딱히 쓸모 있는 굿즈는 크게 없어 보여서 그냥 일러스트가 그려진 프로스트 유리잔을 하나 사오는 데에 그쳤다.
왼쪽에는 요즘 유행하는 애니메이션인 최애의 아이가, 오른쪽에는 아직도 살아있냐는 소리가 나오는 유유시키가 있었다. 여담인데, 최애의 아이는 개인적으로 매우 불호인 작품이었다. 뭘 말해도 스포일러라 자세히 짜증낼 수 없는 게 더 짜증나는 작품이다.
우미씨는 홀로라이브 칸다 마츠리랑은 관계가 있나 싶었는데...오른쪽 아래에 홀로라이브 칸다 마츠리라고 적혀 있으니 일단 관계가 있긴 한가보다 싶었다.
"1시 30분에 칸다역에서 만납시다"
공교롭게도 오늘 만나기로 한 장소도 칸다역이었다. 뭐 아키바도 오챠노미즈도 칸다도 서로서로 엄청 가까우니까 나야 좋았다. 이날도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막상 보니 반가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돈카츠 가게로 갔다.
주문한 돈카츠는 추천받은 메뉴인 상 로스카츠 정식. "상"이기 때문에 나름 양이 많은 버전이다. 돈카츠는 말 그대로 "맛있는 돈카츠"의 표본 같은 맛이었다. 일행은 100엔을 추가로 와사비를 주문했다. 와사비가 약간 특이하게 생겼었는데, 줄기 와사비라고 했다. 나한테도 돈카츠에 와사비를 곁들여 먹는 건 어떻냐면서 자신의 와사비를 권해 줬는데, 나름 와사비 특유의 맛이 기름진 돈카츠와 잘 어울렸다. 튀김류를 와사비와 같이 먹는다는 걸 생각하면 돈카츠와 와사비는 당연하게도 정말 좋은 조합이었다.
이후 잠시 칸다에서 마루노우치를 건너 히비야까지 산책을 했다. 마루노우치를 지나면서 "대체 마루노우치라는게 정확히 뭐에요?"라고 물어봤는데, 자신도 설명하자니 잘 모르겠다면서 검색해서 알려주었다. 마루노우치는 그냥 지명이었다고 한다. 마루노우치 어쩌고 거리부터 JR마루노우치선까지 단어가 하도 많이 보여서 물어봤는데 그냥 지명이었다니.
오챠노미즈 주변 구경
오챠노미즈에는 이번에 묵을 숙소도 있었기 때문에 잠시 짐을 풀고 나와서 오챠노미즈 주변을 구경하기로 했다. 먼저, 칸다묘진으로 향했다. 아키바를 돌 때도 온종일 홀로라이브 X 칸다 마츠리 콜라보 포스터가 보여서 뭘까 하는 마음에 향했다.
그냥 평범한 신사였다. 일본의 3대 축제라고 하면서 그중에 칸다 마츠리가 있는 것은 익히 들어 왔기 때문에 칸다묘진도 뭔가 있겠거니 했는데 신사 자체가 막 그렇게 인상깊지는 않았다. 나중에 찾아봤는데, 칸다 마츠리가 시작되면 신사 외부의 거리부터 시작해서 일대에 포장마차 등이 들어서면서 축제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한다.
그리고 칸다묘진에서 다시 오챠노미즈역으로 향하는 길에, 사람들이 멈춰서서 사진을 찍길래 나도 한 장 찍었다. 풍경이 이뻐서 사람들이 많이 찍나 싶었다. 사진을 찍고 바로 친구들한테 보냈는데, '여기 거기 아니냐' 같은 반응이 좀 들려 왔다. 대체 여기가 어디길래 얘네들도 아는 거지 싶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여기가 스즈메의 문단속에 나오는 그곳이었다.
처음에 찍을 때는 정말 뭔지도 모르고 찍었는데, 스즈메라는 말을 듣고 보니까 확실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요한 장면이었으니까...원래 '봇치 더 락!' 성지순례를 하려고 오챠노미즈, 시모키타자와나 에노시마 등을 갈 예정이었는데 본의아니게 스즈메 성지순례를 먼저 해 버리고 말았다. 인생 첫 성지순례는 봇치가 스즈메에게 빼앗겼다.
스즈메의 문단속을 처음 봤을 때에는 나름 재밌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판타지적 요소도 있고,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사람들 입장에서는 동일본 대지진을 의식하고 보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 싶었다. '너의 이름은.' 의 성적에는 못미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내가 영알못이었나보다. 보라는 듯이 국내 개봉 일본 영화 1위를 갈아버리고 신카이 마코토의 내한을 재차 이끌어낸 영화가 되었다.
흠...그 정도인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오챠노미즈의 악기점 거리. 이곳은 역에서 칸다묘진으로 가는 출구의 반대편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인다. 원래 오챠노미즈 악기 거리는 딱히 생각이 없었는데, 베이스 레슨 선생님께서 일본에 가게 된다면 악기점을 한번 가 보라고 하셔서 이곳에도 들리기로 했다.
결과는 대성공. 최근에 기변병이 도지고 있었기 때문에 새끈한 베이스들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펜더나 뮤직맨 등 익히 들어본 브랜드의 베이스도 많이 보였다. 특히, 중고 상품이 생각보다 꽤 많았는데, 악기 중고 시장이 꽤나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악기 관리 상태는 볼 줄도 모르지만, 중고 악기의 외관도 다들 좋아 보였다. 그리고 비싼 악기는 중고도 비싸더라...
체감상 단연 기타가 제일 많았고, 그 다음 베이스나 우쿨렐레, 바이올린이나 관악기 등이 좀 있는 정도였다. 하이엔드 플로어라는 곳을 잠시 가 봤는데, 가격을 보고 나니까 이건 눈으로 보기만 해도 돈을 내야 할 것 같은 오라가 풍기는 악기들밖에 없는 것 같아 바로 도망쳐 나왔다. 내가 그런 악기를 사는 날이 올까...
이후 주변을 조금 더 돌다가 해가 져서 완전히 어두울 때쯤 숙소로 들어오게 되었다.
잠시 편의점에 들러 뭘 먹을까 고르면서 눈에 띄어 집어온 게 아사히 수퍼 드라이 나마죠키. 말 그대로 맥주잔을 따면 거품이 올라온다는데, 국내에 들어오기 전부터 나름 참신한 컨셉으로 꽤 유명했어서 알고는 있었다. 다만 내가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한 달에 한 번 마실까 말까 한 수준이라 그냥 거품이 난다는 것 말고는 뭐가 특별한지 딱히 모르겠었다.
거품을 즐기고 싶으면 그냥 맥주잔에 캔맥을 거품이 나도록 따라 마시면 되는 게 아닐까...? 국내에서는 없어서 못 구한다는데 일본에서는 널리고 널린 게 이 맥주였었다.
마무리
6일차 결산
실패한 일정: 없음
오전에 잠시 아키바를 들리는 건 즉흥이었고, 지인을 만난 후 오챠노미즈 주변을 돌면서 악기점에 간다는 아주 간단한 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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